논문
원효의 정토사상과 무애의 아름다움
저자 : 김현희 ISBN : 2233-9981
발행기관 : 민족미학회 발행년도 : 2011
간행물 : 권·호 : 민족미학 10권 1호 /
페이지 : 15-48
첨부파일
첨부아이콘 원효의 정토사상과 무애의 아름다움.pdf
소개
키워드
무애 정토 화쟁 일심 달항아리 Moo-ae Pure-land Whajaeng (Make-peace) Ilsim(One-heart) Dal-hangari (Moon-jar)
목차
Ⅰ. 글에 들어서며 Ⅱ. 정토 사상이란 무엇인가? Ⅲ. 미륵정토사상과 미타정토사상 Ⅳ. 원효의 정토사상 Ⅴ. 한국 문화와 정토사상 Ⅵ. 달 항아리―무애의 아름다움
초록
원효는 여래장과 일심 사상을 바탕으로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의 사상을 화쟁하였다. 그는 또한 미륵정토, 미타정토, 유심정토의 정토사상으로 무애행으로서의 실천행에 들어섰다. 원효의 사상은 한편 샤머니즘 및 용신신앙과 습합된 미륵신앙과 화랑도 등을 아우르는 것이었다. 의 서문에서 보여주는 화쟁과 일심의 사상이 ‘귀일심원’의 바탕이 된다면, ‘요익중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정토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실천행이다. 이 두 가지는 不二이면서 하나가 아닌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원효의 사상은 신라 중대의 문화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삼국통일 후 당나라의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주적인 문화를 일궈내려는 노력들의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다. 미래의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정토사상의 영향은 신라 하대와 고려 시대에도 향도(香徒)로 이어지고 고려 말에는 매향의 의식을 낳게 된다. 조선시대에 들어 억불숭유의 정책으로 불교문화가 쇠퇴하지만 당금애기신화와 같은 서사무가 속에 무속과 습합된 불교의 영향이 남아 있었고, 기층에 흐르던 이러한 기운은 조선 후기 실학의 시대에 자주적 문화를 일으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시대의 전조 및 징후로서 나타난달 항아리는 원효가 추구했던 무애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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