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의상(義湘)과 원효(元曉)의 관음신앙 비교 『삼국유사(三國遺事)』 〈낙산이대성 관음정취조신(洛山二大聖 觀音 正趣 調信)〉을 중심으로
저자 : 박미선 ISBN : 1226-6213
발행기관 : 한국고대사학회 발행년도 : 2010
간행물 : 한국고대사연구 권·호 : 60권 /
페이지 : 197-230
첨부파일
첨부아이콘 義湘과 元曉의 관음신앙 비교.pdf
소개
키워드
의상, 원효, 낙산, 화엄경, 법화경, 관음신앙, Uisang, Wonhyo, Naksan(洛山), The Flower Garland Sutra, The Lotus Sutra, Avalokitesvara belief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낙산(洛山) 관음신앙의 형성
Ⅲ. 의상(義湘)과 원효(元曉)의 관음신앙
Ⅳ. 맺음말 - ‘낙산’ 관음신앙의 의미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三國遺事』 〈낙산이대성〉 조에는 義湘이 낙산에서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했지만, 元曉는 보지 못했다는 설화가 실려 있다. 기존 연구에서는 이 설화를 梵日이나 그 제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또는 고려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범일은 낙산에 正聚보살을 안치했으며, 정취보살은 『華嚴經』에서 관음보살의 소개로 선재동자가 만나는 선지식이다. 그러므로 정취보살을 안치했다는 것은 이곳 낙산이 이미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인식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기에 낙산의 관음신앙이 크게 유행했는데, 다만 고려 사람들은 의상과 관련된 寶珠 등의 유물보다 원효와 관련된 靑鳥, 冷泉 등을 더욱 숭상하고 있었으므로, 원효가 관음보살을 친견하지 못했다고 언급한 이설화가 고려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 설화는 의상이 『화엄경』을 근거로 낙산을 관음보살의 상주처로 인식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낙산의 관음신앙을 통해 수행자에게 보살도ㆍ보살행의 구도적 자세를 요구하였으며, 진신상주를 인정하여 관음보살뿐 아니라 부석사의 아미타불 또한 獨尊으로 안치하였다. 반면에 원효는 일찍부터 수용된 『法華經』에 근거한 현세구제적 관음신앙을 접하면서, 중생의 극락왕생을 위한 아미타신앙을 강조하였고, 이에 관음보살에게 극락왕생을 안내하는 매개자의 역할까지 부여하였다. 이렇게 두 성인의 관음신앙에 대한 접근이 달랐기 때문에 의상이 만든 관음보살의 상주처인 낙산에서 원효는 관음의 진신을 친견할 수 없었다는 설화가 등장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여전히 신라에서는 현세구제적 관음신앙이 중심이 되었으나 진신상주 신앙은 신라의 불국토사상으로 이어져 재가신도들까지도 수행을 통해 현신성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등 통일기 신라 불교계에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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