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청도지역의 견훤전승과 사실 또는 형상의 역사
저자 : 천혜숙 (안동대학교) ISBN :
발행기관 : 실천민속학회 발행년도 : 2019
간행물 : 실천민속학연구 제33호 권·호 : /
페이지 : pp. 69 - 117(49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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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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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청도지역의 견훤전승
3. 나말려초의 청도와 견훤전승의 역사적 진실
4. 결어
참고문헌
초록
청도지역의 견훤관련 전설은 소략한 편이지만 신라 왕경과 경계인 운문면에 분포한 데다 흥미로운 변이를 보여주고 있어, 전설과 역사의 관계 해명에서 유의미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대체로 세 가지 관점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다. 하나는 전설의 전승과 분포 자체가 역사적 사실의 반영임을 확인하는 것이고, 둘은 전설적 사실들이 기록에서 부재하는 역사를 부분이나마 보완할 수 있는가를 탐색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는 전설의 전승과정에서 이루어진 형상과 구조의 역사, 그 역사적 진실의 실체에 다가가 보는 것이다.
우선 청도는 신라 왕경이 기전(畿甸) 지역으로 왕경의 수호를 위해 서기정(西畿停)이 배치되어 있던 곳이다. 또한 전설군이 채록된 운문면 신원리는 왕경의 서쪽 경계지역으로 일찍부터 한반도 서남부에서 이곳으로 들어가는 교통로가 개척되어 있었다. 따라서 나말려초 후백제와 고려가 경상도 공략에 힘을 쏟았을 당시, 이 지역에서도 공략과 교전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설 전승의 사실 자체가 그러한 가능성을 담보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견성싸움’ 기사는 당시 청도지역의 전쟁사를 읽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태조는 이 싸움을 계기로 선종계열의 승려 보양과 밀양 호족 손긍훈 장군과의 삼자 연대를 통해 작갑사[운문사]를 중창하고 청도지역을 우회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견훤의 경우는 견성싸움 기사의 ‘산적’ 외에는 달리 공략을 읽을 만한 어떤 단서도 없다. 견훤이 쌓았다는 지룡산성이 이 미궁의 역사를 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코드이다. 당시 후백제와 고려간에 벌어진 전쟁사의 흐름을 따라가 보면 ‘견훤의 지룡산성 축조’와 ‘태조의 운문시 중창’은 청도지역에서 이루어진 양국간의 대립적 공략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승자의 비호를 받은 운문시는 고려조 이래 사세가 크게 확장된 데 비해, 패자의 지룡산성은 거의 무너진 채 몇 편의 전설로 그 역사적 기억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으로, 견훤전승이 담아낸 역사적 진실은 나말려초의 사실적 역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실적 기억은 전설의 전승과정에서 형상화되고 구조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지역의 견훤전승에서는 후백제 왕 견훤이 점차 망각되고 지렁이 또는 ‘지룡’으로 바뀌는 현상이 나타난다. 지룡의 언표와 형상은 지렁이를 용신격으로 인식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 지역유형의 지룡은 신이한 능력으로 거사 도모를 위해 산성을 쌓았지만 그 정체가 노출되어 실패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지렁이/지룡의 정체 노출-거사 실패의 구조가 두드러지면서 동 지역의 이무기 전승과도 접맥되는 흥미로운 변이가 나타난다. 때로 지룡이나 이무기의 실패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이주나 잠행으로 유보되는 변이도 확인되는데, 이는 민중의 정신세계가 자주 패배한 영웅의 재귀나 귀환을 기대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민중적 세계관이야말로 전설적 형상과 구조를 통해 드러날 수 있는 역사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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