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경산 소월리 유적 출토 人面透刻土器와 목간의 기능 - 목간의 기능과 농경의례 -
저자 : 이용현 (국립경주박물관) ISBN :
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발행년도 : 2021
간행물 : 동서인문 제16호 권·호 : /
페이지 : pp. 95 - 127(33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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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키워드
#경산 소월리 유적 #인면투각토기 #목간의 기능 #농경의례 #Gyeongsan Sowol-ri Site #Human Face Carved Earthenware #Function of Wooden Tablet #Agricultural Ritual #74cm
목차
국문초록
1. 序言
2. 木簡 共伴遺物의 樣相과 農耕儀禮
3. 木簡의 再活用과 그 時期
4. 結言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경산 소월리 유적 수혈 유구에서는 목간과 함께 인면투각토기, 시루토기, 나뭇가지다발 목제품 등이 동반 출토되었다. 나뭇가지 다발은 풍작기원 관련 주술행위와 유관하며, 시루토기는 경산 지역에서 고래로 제의에 활용되었다. 인면투각토기 역시 제의과 유관하며, 묘사된 인면은 지역사회의 농경과 안녕을 관장하는 토착신을 의인화한 것으로 보인다. 민속지적 사례로 볼 때, 영동신과 그 성격이 흡사해 보인다. 한편 이들과 함께 매납된 목간 역시 제의물의 용도로서 헌상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역사회의 소출이 기록된 목간의 내용, 75cm라는 장대한 외형은 풍작기원의 취지에 부합한다. 이 목간은 원래는 관문서로서 작성되었다가 그 문서적 기능이 폐기된 후, 2차적으로 지역사회의 농경의례에 활용되었다. 용도폐기 된 관문서가 지역 농경의례에 활용되었다는 것은, 국가가 지역사회의 농업 및 농경의례까지도 깊숙이 간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즉 토지개간과 수리시설 확충, 농업진작을 매개로 국가의 지역사회에 대한 장악이 국가의 저변 바닥까지 관철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6세기초에 불교가 공인된 이후인 6~7세기 단계에도 여전히 지역사회에서는 도교 혹 토착색 짙은 종교와 신앙이 지역사회를 규제하고 있었으며, 국가 역시 지역 관리에 토착 종교를 존중하며 이에 의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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