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7세기 전반기 新羅 危機意識의 실상과 皇龍寺9층木塔
저자 : 박승범 (한성대) ISBN :
발행기관 : 신라사학회 발행년도 : 2014
간행물 : 신라사학보 제30호 권·호 : /
페이지 : pp. 301 - 347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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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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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善德王代 신라 대외 위기의 실상과 내적 갈등
Ⅲ. 황룡사9층목탑의 건립과 설화적 분식
Ⅳ. 맺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초록
皇龍寺9층 木塔에 대한 기존 인식은 7세기 들어 심화된 국가적 위기에 처한 신라가 이를 타개하고, 신라 중심적 천하관을 더하여 건립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탑이 논의되었던 643년까지도 대야성의 함락을 제외하면 국가적 위기의식을 초래할 만한 상황은 없었다. 위기의 실상은 당대 신라사회를 주도한 사륜계-금관가야계의 정치적 실각의 가능성이었다.
황룡사 9층탑은 분명하고 실제적인 실각 위기에 처한 舍輪系와 金官伽倻系등 신귀족세력의 국면전환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위기 극복을 위해 신귀족세력의 중심인물인 용춘이 건탑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위기를 신라 전체의 위기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신라는 정치적 군사적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고, 김춘추의 대외 외교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100여년에 걸쳐 지속된 항시적 전쟁으로 고통받았던 신라의 일반 백성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평화의 근원적 원인을 황룡사탑에서 찾았다. 심오하고 이해하기 힘든 언사로 이루어진 경전과 佛法행사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전통적 신앙체계의 연장선에서 이해되었다. 이같은 불교이해방식에 따라 황룡사탑의 연기설화를 백성 자신들의 언어로 창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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